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무라사키 시키부 (문단 편집) === 생애 === 후지와라 북가(北家) 계열의 학자인 후지와라노 다메토키(藤原為時)의 집안에서 태어나, 어깨 너머로 배운 것이 남동생보다 뛰어났다[* [[한문]]과 [[가나(문자)|가나]] 문장 양쪽을 다 쓸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여성의 학재가 뛰어나면 여자답지 못하다고 여겨진 시대적 풍조 상 내성적이고 겸손한 성격이 되었다고 한다. [* 후지와라노 쇼시 중궁의 여방으로 궁중에 출사했지만 초기에는 궁중(단체)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잠깐 본가로 돌아가기도 해서 동료 여방들은 시키부에게 중역출근(높으신 분처럼 출근하고 싶을 때 출근하는 것)이란 별명을 붙였다.] 일기에서 동시대의 여문이자 라이벌 격인 [[이즈미 시키부]]와 [[세이 쇼나곤]] 등의 뒷담화를 대놓고 썼는데, 특히 [[세이 쇼나곤]]이 지식을 뽐낸다고 엄청 헐뜯기도 한다. 같이 쇼시 중궁을 모시는 [[이즈미 시키부]]는 황족과 스캔들을 일으키고[* 그것도 [[불륜|남편이 있는 상황에서 레이제이 천황의 3황자 타메타카 친왕(爲尊親王)과 스캔들을 터트렸고]], 타메타카의 사후 [[형제덮밥|그의 친동생 아츠미치 친왕(敦道親王)의 구애를 받아 아들까지 낳는 지경]]에 이르렀다.] 귀족 사회에서나 그녀를 딸의 여방으로 고용한 [[후지와라노 미치나가]]까지 같은 평가를 할 정도로[* 일명 "나대는 계집(浮かれ女)"이라고 평가했다고.] 나댄다는 말을 많이 들었던 점, [[세이 쇼나곤]]은 쇼나곤이 출궁한 이후 시키부가 쇼시의 여방으로 들어온지라 서로 만난 적은 없어도 성격이 맞지 않는 것과 더불어 다른 황후를 모신다는 점 때문에 라이벌 구도였다 섭관시대 최고의 권력을 누린 [[후지와라노 미치나가]]가 딸 [[후지와라노 쇼시|쇼시(彰子)]]를 [[이치조 덴노|이치조 천황]]의 중궁으로 들이면서 [[세이 쇼나곤]] 등 당대의 재녀들을 [[시녀]](女房)로 모은 형 미치타카의 딸인 기존 황후 [[후지와라노 테이시]](藤原定子)에게 밀리지 않기 위해 쇼시의 시녀로 교양있는 여자를 모집했고 여기에 무라사키 시키부가 뽑히며 궁중 생활을 접하게 된다. 중궁 테이시의 아버지 미치타카가 죽은 뒤에 미치타카의 동생 미치나가와 미치타카의 아들 사이에서 권력투쟁이 있었고, 여기서 승리해 최고권력자가 된 미치나가는 앞서 입궁한 조카 테이시를 황후로, 딸 쇼시를 중궁으로 만들었다. 원래 중궁=황후였는데 이 때부터 황후와 중궁을 구별하기 시작했다. 미치나가는 무라사키 시키부를 쇼시의 시녀로 초빙했고, 시키부가 쇼시를 섬기면서 쓴 것이 [[겐지모노가타리]]. 겐지모노가타리가 막 쓰여졌을 무렵에는 중궁과 다른 궁녀들 앞에서 구연되었는데, [[천황]]도 함께 들으면서 쇼시의 처소에 뻔질나게 드나들게 되었기 때문에 오히려 그것을 의도한 것 같다. 한편 무라사키 시키부의 일기에서 [[후지와라노 미치나가]]가 집적거렸음을 암시하는 내용이 여러가지 있는데[* 시를 읊으라고 하거나, 시끄러운 거 싫다고 방에 가 있더니 불러내거나, 밤에 찾아오는 등] 본인은 절대 아니라고 강하게 부정하지만, 이 둘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많다. 덧붙여 [[후지와라노 긴토]]도 그녀에게 들이댔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후지와라노 긴토는 겐지모노가타리 팬이기도 했으며 아츠히라 친왕의 출생 50일 기념 축하연에서 시키부가 보이지 않자 궁녀들이 있는 휘장을 들추며 "어린 무라사키노우에가 여기 있는가"라고 시키부를 애타게 찾아 돌아다녔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정작 시키부는 긴토에게 전혀 마음이 없었는지 휘장 뒤에 숨어서 대답도 않고 "자기가 히카루 겐지도 아닌 것이 왜 들이대고 앉았지?" 하며 일기에서 깠다. 이 축하연이 11월 1일이었는데 긴토가 여방들이 있는 휘장을 들추며 시키부를 찾던 이 날로부터 천년 후인 2008년 11월 1일, 일본은 겐지모노가타리가 지어진 지 천년이 되는 이 날을 겐지의 날로 지정하여 문화행사를 가졌다. 정확히는 겐지모노가타리가 처음 언급된 날짜라는 데 의의를 두는 듯. 물론 마음에 둔 여자한테 까인 후지와라노 긴토에게 있어서는 두고두고 본인의 스토커 행적 즉 흑역사가 박제된 셈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